국내 디지털 경제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메가딜’이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인터넷 플랫폼의 제왕 네이버와 가상자산 시장의 절대 강자 두나무가 단순한 사업 협력을 넘어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한 합병을 심도 있게 논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단순한 기업 결합이 아닌, 대한민국 디지털 금융의 미래와 두 거대 기업의 지배구조까지 재편할 수 있는 흐름이다. 당장 기업금융(IB) 업계와 양사 내부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논의의 핵심은 네이버의 금융 자회사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의 결합을 통해 ‘한국판 구글-코인베이스’ 모델을 구축하는 데 있다.
형식상으로는 네이버파이낸셜이 두나무를 100% 자회사로 편입하는 구조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그러나 이번 딜의 본질은 그 이면에 있다. 기업가치와 재무 성과 면에서 두나무가 네이버파이낸셜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평가하는 두나무의 기업가치는 약 14조원에서 15조원에 달하는 반면, 네이버파이낸셜은 5조원 안팎으로 평가받는다. 실질적으로는 가치가 더 큰 기업이 작은 기업 아래로 들어가는 ‘역합병’의 성격을 띠는 셈이다. 이 기묘한 결합의 이면에는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네이버와 글로벌 확장의 발판이 필요한 두나무, 양사의 절박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빅딜이 현실화될 경우, 국내 디지털 금융 시장은 전례 없는 지각변동을 맞이하게 될 전망이다. 4000만명에 달하는 거대 사용자 기반과 연간 80조원 규모의 결제 인프라,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블록체인 기술력이 결합해 기존 금융 시스템을 위협하는 ‘종합 디지털 금융 플랫폼’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네이버에서 조만간 관련 내용에 대한 공식 기자회견을 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가운데,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디지털 금융의 새로운 질서
이번 합병 논의의 출발점은 두 기업이 처한 각자의 ‘성장통’에 있다.
네이버는 최근 몇 년간 뚜렷한 성장 정체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검색과 광고, 커머스라는 전통적인 성장축은 여전히 견고한 실적을 내고 있지만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나 글로벌 사업 확장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미래 성장 스토리가 부재하다’는 시장의 냉정한 평가에 직면해왔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절대 강자이지만 글로벌 경쟁 무대에서는 구글, 아마존 등 거대 빅테크 기업에 밀려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점은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의 오랜 숙제로 남아있었다.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엄청난 위기의식이 팽배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이대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에 대부분이 공감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두나무의 상황은 다르면서도 비슷했다.
두나무가 운영하는 업비트는 국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글로벌 현물 거래량에서도 미국의 코인베이스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며 존재감을 입증했다. 다만 그 이면에는 ‘가상자산 거래소’라는 단일 사업 모델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 변동성이 큰 규제 환경의 불확실성, 그리고 기업공개(IPO)라는 해묵은 과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두나무 경영진은 거래소 사업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제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생태계 확장과 사업 다각화를 절실히 모색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네이버와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필요한 두나무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지점이 바로 이번 합병 논의다.
네이버는 두나무의 블록체인 기술력과 가상자산 인프라를 통해 금융과 데이터를 아우르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두나무는 네이버라는 거대한 플랫폼의 안정성과 신뢰도를 등에 업고 제도권 편입과 글로벌 시장 진출을 가속화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협업을 넘어 각자의 구조적 결핍을 메우고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필연적인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합병 시너지의 심장,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양사 결합이 가져올 시너지의 핵심에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두 기업은 합병을 통해 원화에 가치가 1대 1로 고정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디지털 금융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거대한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해 실제 결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암호화폐로, 블록체인과 전통 금융을 잇는 가장 현실적인 가교로 평가받는다.
이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연간 결제액 80조원에 달하는 네이버페이의 방대한 인프라와 4000만명 이상의 사용자 기반은 스테이블코인을 실물 경제에서 실험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이다. 여기에 두나무가 자체 개발한 레이어2 블록체인 ‘기와(Giwa)’가 결합하면 시너지는 극대화된다. ‘기와’는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보조 블록체인으로 여러 거래를 한 번에 묶어 처리하는 ‘옵티미스틱 롤업’ 기술을 적용해 거래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고 수수료는 10분의 1 이하로 낮춘 것이 특징이다.
두나무가 기와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이를 네이버페이 결제망과 연동하면 ‘발행(두나무) - 유통(업비트) - 사용(네이버페이)’을 아우르는 완결된 자체 생태계가 구축된다. 이는 금융의 모든 과정이 외부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내부에서 처리됨을 의미한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기존 카드사에 지불하던 2~3%대의 결제 수수료를 1% 미만으로 대폭 절감해 막대한 비용을 아끼고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다. 두나무는 거래소 수수료 외에 스테이블코인 운영이라는 새로운 핵심 수익원을 확보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이 사업 모델만으로 2030년까지 연간 수천억원대의 신규 수익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 넘어 콘텐츠까지 "무한 확장하는 시너지 잠재력"
양사의 결합이 가져올 시너지는 단순히 금융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용자 기반의 통합과 데이터 결합은 가상자산 시장의 대중화를 앞당기는 기폭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가상자산 시장의 가장 큰 진입 장벽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고객확인(KYC) 절차다. 그러나 네이버의 간편 로그인, 모바일 신분증 등 검증된 인증 인프라를 활용하면 이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이는 수백만 명의 잠재적 투자자들이 아무런 장벽 없이 자연스럽게 업비트로 유입되는 거대한 통로를 열어줄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시너지의 범위는 네이버가 보유한 막강한 콘텐츠 지식재산권(IP)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일례로 네이버웹툰이 보유한 글로벌 IP 생태계에 두나무의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창작물의 소유권을 명확히 하고 2차 저작물의 수익 분배 구조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다.
팬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토큰 보상 체계를 도입하거나 인기 웹툰 IP 자체를 토큰화하여 거래하는 구조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는 콘텐츠 IP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혁신적인 시도가 될 것이다.
상장 측면에서도 이번 결합은 두나무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당장 두나무가 단독으로 나스닥 상장을 추진할 경우, 가상자산 거래소라는 사업 구조의 한계와 규제 불확실성 탓에 기대만큼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내부적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네이버파이낸셜과의 결합을 통해 ‘디지털 금융 플랫폼’으로 포지셔닝을 바꿀 경우 글로벌 시장의 평가는 완전히 달라진다.
결제, 투자, 블록체인 기술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 금융 인프라 기업으로 재평가받으며 40조원에서 50조원 수준의 밸류에이션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IB 업계의 분석이다.
이코노믹 리뷰 / 최진홍 기자
원문 : https://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71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