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역화폐·공공 바우처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통합 관리하는 '블록체인 기본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29조원 규모의 지역화폐 시장이 디지털 대전환을 앞두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올해 1·2차 추경에 지역화폐 사업 국비 1조원을 편성한 가운데 정부는 '투명성 강화'를, 민간은 '시장 선점'을 명분으로 지역화폐의 블록체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과기정통부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법무법인 태평양과 마련한 블록체인 기본법 초안에 따르면 정부는 '국가형 블록체인 인프라'를 구축해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이 별도 시스템 구축 없이 지역화폐, 디지털 바우처, 모바일 신분증, 온라인 투표 등에 블록체인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법안은 이르면 연내 국회에 발의된다.
앞서 행정안전부는 올해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에 총 1조원의 국비를 투입했다. 이는 2024년 3000억원에서 3배 이상 급증한 규모다. 정부는 내년에도 1조1500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전국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지난 9월부터는 할인율도 기존 5~10%에서 7~15%로 대폭 상향했고, 인구감소지역과 특별재난지역은 최대 20%까지 혜택을 받는다.
지역 차원에서도 블록체인 전환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부산은행은 지난 6월 지역화폐 동백전을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하는 '신동백전' 연구에 착수했다. 2019년 출시 이후 가입자 160만명, 누적 발행액 5조원을 돌파한 동백전을 전국 최초의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부산은행은 한국은행의 CBDC 실험 '프로젝트 한강'에 참여한 경험을 토대로 스테이블코인 기술을 검토 중이며, 지난 4월에는 주요 시중은행들과 함께 스테이블코인 분과에도 가입했다.
민간 기업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코스피 상장사 인스코비는 6월 블록체인 기업 파라메타와 손잡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반 지역화폐 개발에 나섰다. 올해 하반기 시범 서비스를 목표로 예산 사용의 투명성, 정산 자동화, 거래 추적 등 공공 분야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복수의 지자체와 실증사업 도입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스코비 디지털자산본부 심규석 상무는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하면 보안 취약점과 3일씩 걸리는 정산 지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실시간 거래 추적으로 투명성이 높아지고, 타 지역화폐와의 연동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방식에 대해서는 그는 "디지털 지갑으로 잔돈 손실 없이 일대일 원화 교환이 가능하고, 결제 속도도 빨라진다"며 "발행 예치금으로 국채나 지방채를 매입하면 자금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아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핀테크 기업 코나아이는 앞서 스테이블코인 시연회를 개최, "소비로 투자한다"는 독창적 모델을 공개했다. 충전된 법정화폐를 부동산·국채 등에 운용해 수익을 창출한 뒤 사용자에게 인센티브로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가 핵심이다. 업계 최초로 기존 카드 단말기를 통한 스테이블코인 결제 시연에도 성공, 80여명의 금융권 관계자가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코나아이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 시장에서 핵심은 기술력과 실무 경험의 결합"이라며 "60여개 지자체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7년간 자체 블록체인을 연구해왔고, 7월 실물 시연으로 기술적 완성도를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화폐 정책 효과 분석을 주요 차별화 포인트로 보고 있다"며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를 찾는 실험의 도구인 동시에 정책의 실제 효과를 검증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지역화폐의 경제 효과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지역화폐의 소비 진작 효과가 30~40%에 그친다며 과도한 재정 투입을 비판한다. 정부는 이에 대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지역화폐 사용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정책 효과를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어 투명성과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처럼 정부와 민간이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로 방향을 틀고 있지만, 법적·제도적 장애물은 여전히 높다. 현재 제도상 지역화폐는 상품권으로만 법적 지위를 인정받으며, 블록체인 기술 등이 적용된 지역화폐와 관련한 세부적인 법률은 아직 미비한 상태다. 정부는 블록체인 관련 기본법 제정 및 지역화폐 관련 추가 제도 개선을 예고하고 있으나, 개인정보보호·스마트계약 등 기술 관련 법적 보완 과제가 남아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코나아이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는 기존 지역화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적 솔루션을 이미 갖추고 있다"면서도 "현행 법제도 하에서는 실제 적용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자체가 조례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새로운 모델을 도입한다면 준비된 기술력으로 신속하게 구현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코나아이 측은 규제 샌드박스나 한시적 특례 허용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그는 "실증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기술이 실제로 지역경제에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검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도 개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검증된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는 환경이 곧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지자체 관계자는 "블록체인 전환에는 초기 투자 비용이 만만찮고, 주민들의 수용성도 검증되지 않았다"며 신중론을 제기했다.
한스경제 / 전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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