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발생하면 환율·금융시장 마비”
김신영 한국은행 외환업무부장. 한국은행 유튜브 채널 ‘스테이블코인의 이해와 오해’ 영상 화면.
김신영 한국은행 외환업무부장. 한국은행 유튜브 채널 ‘스테이블코인의 이해와 오해’ 영상 화면.
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이 국경 간 자금 이동을 ‘은행을 거치지 않고’ 가능하게 만들면서 외환 규제의 우회 통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유통되고 개인 지갑 직거래가 확산되면, 평상시 자본 유출 압력이 커지고 위기 국면에는 전 국민이 동시에 원화를 매도하는 ‘핑거런’이 촉발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 “스테이블코인, 보완적 지급 수단 성격”
15일 한국은행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의 이해와 오해’ 영상을 게재했다.
이날 김신영 한국은행 외환업무부장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해외거래소나 디파이 시장에서 담보로 쓰이고 알고리즘으로 거래될 가능성이 크다”며 “국내 달러 스테이블코인 가격이 폭등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디패깅이 발생할 수 있고, 이것이 원화 가치나 원화 국채 불안으로 번지면서 원/달러 환율까지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경우, 전 국민이 동시에 버튼 하나로 원화 코인을 팔고 달러 코인을 사는 ‘핑거런’이 촉발될 수 있다”며 “환율 급등에 핑거런까지 가세하면 외환시장뿐 아니라 금융시장 전체가 즉시 마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신영 외환업무부장은 “현금을 직접 들고 나가는 게 아니라면 반드시 은행 등 금융기관을 통해야만 해외로 자금을 보내거나 받는 것이 가능하다”며 “그런데 스테이블코인이 이 견고한 금융 시스템에 균열을 냈다”고 말했다. 그는 “국경 간 자금 거래가 마치 이메일처럼 간편하고 빨라진 데다, 은행이라는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지 않고도 가능해지니 규제 우회가 쉬워졌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불법 자금 유출 수요의 선호 대상이 될 가능성을 전제로, 현재는 ‘거래소 밖’에서 코인을 구하기 어렵고 위험하다는 점이 진입장벽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봤다.
그는 “원화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쉽게 바꾸는 건 실명이 인증된 중앙화된 거래소 안에서만 가능하고, 거래소 밖으로 보내는 단계까지는 실명 기록이 모두 남는다”며 “거래소 밖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사려고 하면 거래 상대방을 찾기 어렵고 불법 브로커일 확률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발행한다는 건 원화의 국경 간 거래와 해외 예금을 허용하는 것과 같다”며 “현행 외환 규제에서 엄격히 규제하는 원화의 해외 반출이 가능해져 사실상 원화 자유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일상 생활에서 지급 수단으로 쓰이게 되면 겉모습만 봐서는 정상과 불법 거래를 구분하기 어렵고 규제의 빈틈도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은행 유튜브 채널 ‘스테이블코인의 이해와 오해’ 영상 화면.
한국은행 유튜브 채널 ‘스테이블코인의 이해와 오해’ 영상 화면.
한국은행은 자금세탁방지(AML)·고객확인(KYC) 등이 외환 규제를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에도 선을 그었다.
김 부장은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AML과 KYC 규제로 국내 외환규제를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며 “AML·KYC는 사후 확인이 원칙이지만, 국내 외환규제는 사전 확인 원칙으로 해외송금 사유와 증빙을 제출해 확인받은 다음에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에 국부유출 위험을 방치할 수 없다”며 “AML과 KYC만으로는 이를 막을 명분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은행은 제도화의 방향성을 남겼다.
김신영 부장은 “스테이블코인은 법정 통화와 기존 금융시장에 기대어 설계된 보완적 지급 수단”이라며 “기술 혁신만으로 화폐의 핵심 요소인 신뢰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혁신과 안정성이 조화된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한은 “스테이블코인 성격부터 따져야”
박준홍 한국은행 결제정책팀장은 “스테이블코인이 혁신 잠재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미 달러화의 대용제로 쓰이는 건지, 아니면 블록체인이라는 생태계에서 혁신적인 결제 수단으로 쓰이는 건지는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이 북미 지역에서 540억 달러가 빠져나왔고, 아시아 208억 달러, 아프리카·중동 86억 달러, 남미 100억 달러 등으로 유입되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이 수요가 혁신 지급 서비스에 대한 수요일지, 달러 대체제로서의 수요일지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 유튜브 채널 ‘스테이블코인의 이해와 오해’ 영상 화면.
한국은행 유튜브 채널 ‘스테이블코인의 이해와 오해’ 영상 화면.
스테이블코인을 ‘가상자산’이 아니라 ‘화폐 대체제’로 봐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박 팀장은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가상자산이 아니고 화폐 대체제의 성격이 있다”며 “통화 정책, 금융 안정, 자본 이동 등 경제 전반에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주요국이 발행 인가, 발행량, 준비자산 구성 같은 사안에 중앙은행 규제 권한을 부여하는 흐름을 짚었다.
박 팀장은 “올해 미국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촉진하기 위해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을 통과시켰다”며 “상장된 비금융 대기업은 원칙적으로 발행을 금지하는 대신 연방준비제도와 재무부, 연방예금보험공사 등 유관 부처 인증 심사위원회가 만장일치로 합의하면 발행을 승인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비금융 상장 기업이 플랫폼 네트워크 효과로 독점적 지위를 공고히 하거나 지급 시장에서 불공정 경쟁을 할 위험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원화 스테이블코인도 관계부처 합의 기반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준홍 한국은행 결제정책팀장. 한국은행 유튜브 채널 ‘스테이블코인의 이해와 오해’ 영상 화면.
박준홍 한국은행 결제정책팀장. 한국은행 유튜브 채널 ‘스테이블코인의 이해와 오해’ 영상 화면.
이날 한국은행은 인공지능(AI) 자율경제를 이유로 스테이블코인이 ‘필수’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책임·거버넌스 공백을 먼저 짚었다.
그는 “AI가 인간을 대신해 의사 결정을 수행하면 대규모 정보를 교환·처리하게 되고, 이를 위해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수단으로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며 “그런데 오류나 운영 리스크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의 소재 논의는 부재하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AI가 결제를 실행하다가 오류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또한 국가 간 AI 결제 오류는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부분이 없다”라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조건부 자동결제는 기존 에스크로와 유사해 오픈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연계로도 구현 가능하다”며 “중요한 건 지급수단이 무엇이냐보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안정적 운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박 팀장은 “화폐의 대체제이기 때문에 발행·유통 과정의 리스크에 대비해 은행 중심 컨소시엄부터 발행하자는 입장”이라며 “리스크 관리 체계가 작동하는지 확인한 뒤 비은행 중심 발행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권의 규제 준수 인프라와 전문성, 비은행의 혁신 능력이 컨소시엄에서 결합되고 기여도에 따라 이익을 배분하면 혁신 동력이 떨어질 이유가 없다”며 “비은행이 주도해야만 혁신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박준홍 한국은행 결제정책팀장과 김신영 한국은행 외환업무부장. 한국은행 유튜브 채널 ‘스테이블코인의 이해와 오해’ 영상 화면.
(왼쪽부터) 박준홍 한국은행 결제정책팀장과 김신영 한국은행 외환업무부장. 한국은행 유튜브 채널 ‘스테이블코인의 이해와 오해’ 영상 화면.
해외 사례로는 일본과 홍콩을 들었다. 박 팀장은 “일본은 비은행 스테이블코인(JPYC) 발행업자에 자금이동업자 등록을 요구하고 이용자 보유 한도를 100만엔(약 1000만원)으로 낮게 설정해 기업 간 결제 용도로는 쓰기 어렵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홍콩 통화청은 인가 기준에서 혁신 능력보다 KYC·AML 규제 준수 능력이 중요하다고 발표했다”며 “한국은 자본 외환 규제 체계를 유지하면서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려는 사실상 최초의 국가”라며 “규제 준수 능력이 검증된 은행권 중심으로 안정성에 더욱 유의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은 중요한 혁신일 수 있지만 기술 혁신만으로 공공성을 지닌 화폐의 신뢰를 대체한 적은 없다”며 “기존 법화 중심 질서를 유지한 채 지급 서비스 혁신이 이뤄져 왔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은행은 10월 ‘디지털 시대의 화폐, 혁신과 신뢰의 조화’라는 제목으로 백서를 발간하고 스테이블코인이 가져올 수 있는 7가지 리스크에 대해 조명했다.
스트레이트뉴스 / 조성진 기자
원문 : https://www.straigh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9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