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이 정부와 빅테크의 핵심 인프라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국내총생산(GDP)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기록하겠다고 발표하자 오라클 솔루션 '피스 네트워크(PYTH)'가 하루 만에 99% 급등했다. 구글은 또 금융기관을 위한 독자 레이어1 블록체인 GCUL을 지난달 27일 공개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일가가 블록체인 기술 기반 가상화폐 WLFI를 출시한 첫날 7조원의 자산을 확보하며 '디지털 골드러시'의 새 역사를 썼다.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World Liberty Financial)이 개발한 이 탈중앙화 금융(DeFi) 플랫폼은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구축됐다. 수십 년간 쌓아온 트럼프 가문의 부동산 자산 가치를 단숨에 뛰어넘는 부의 창출 효과를 입증한 셈이다.
이처럼 주목받는 블록체인은 거래 정보를 여러 컴퓨터에 분산 저장하는 기술이다. 중앙 서버 없이 네트워크 참가자들이 거래 기록을 공유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으로, 모든 거래 정보가 암호화돼 여러 컴퓨터에 동시에 저장된다.
가령 기존 은행 거래 내역이 특정 서버에만 기록됐다면, 블록체인은 전 세계 수많은 컴퓨터에 동일하게 복제·저장된다. 누군가 기록을 바꾸려 하면 전체 네트워크가 즉시 감지해 차단한다. 그래서 '위·변조 불가능한' 장부로 불린다. 비트코인은 이 기술을 최초로 활용한 디지털 화폐다. 블록체인을 인터넷에 비유한다면, 비트코인은 그 위에서 처음 등장한 '이메일' 격이다.
블록체인의 실용적 활용은 이제 금융 영역을 넘어 확산되고 있다. 보안 솔루션 시큐어라이츠에 따르면 지난 3월 20일 프랑스 마르세유 법원은 블록체인에 기록된 '타임스탬프'를 창작 시점의 증거로 인정하는 획기적 판결을 내렸다. 고(故) 알베르 엘바즈의 패션 컬렉션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원고 측이 블록체인 플랫폼에 디자인 스케치를 등록했고, 법원이 이를 유효한 소유권 증명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종이 문서나 공증 절차 없이도 작품의 원본성을 입증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블록체인을 법적 도구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2012년부터 국가 데이터와 전자정부 서비스를 블록체인으로 보호하고 있으며, 영국은 2022년 세계 최초로 NFT를 통한 법정 서류 송달을 허용했다. 독일 연방정부도 블록체인 데이터를 법정 증거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해외 사례에 이어 국내에서도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도입이 활발하다. 국가기록원은 2019년 '블록체인을 적용한 신뢰 기반 기록관리 플랫폼 구축' 시범사업을 완료했다. 전자문서의 생산·관리·보존 전 과정을 블록체인으로 추적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전자문서가 생성되거나 수정될 때마다 디지털 지문인 '해시(Hash)'를 생성해 블록에 저장한다. 문서가 위·변조되면 해시값이 달라져 즉시 탐지된다. 행정안전부와 경상남도, 경남기록원 등 4개 기관이 블록체인 노드를 분산 운영해 한곳에서 조작하더라도 즉시 감지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공공부문에 이어 콘텐츠 유통 시장에서도 변화를 이끌고 있다. 블록체인과 스마트 계약을 결합한 저작권 관리 시스템은 음악이나 전자책이 소비될 때마다 저작권료를 자동 분배한다. 거래 내역이 투명하게 기록돼 불법 복제나 무단 공유를 막는 효과도 크다.
실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보안 플랫폼 블록카이는 작가와 예술가를 위한 블록체인 기반 저작권 보호 서비스를 제공한다. 작품이 업로드되면 타임스탬프가 찍힌 영구적 인증서가 발급되고, 온라인 무단 사용을 추적해 경고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디지털 음악 유통 업체 우조 뮤직은 음악가들이 대형 레이블 없이도 블록체인을 통해 발매하고 저작권료를 직접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블록체인을 '신뢰 인프라'로 인식하고 도입을 확대하면서 시장 규모도 급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지엠인사이트에 따르면 2024년 183억달러 규모였던 블록체인 기술 시장이 2034년까지 연평균 53.6% 성장해 8134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기록이 영구적으로 남는 특성 때문에 개인정보보호와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데이터보호위원회(EDPB)는 "블록체인의 불변성과 개인정보보호규정의 삭제권이 근본적으로 상충한다"며 "블록체인 설계 단계부터 데이터 최소화와 익명화를 적용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더불어 거래 속도와 비용 문제도 과제다. 비트코인은 초당 7건, 이더리움은 15건의 거래만 처리할 수 있어 기존 결제 시스템보다 느리다. 막대한 에너지 소비 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은 블록체인을 '신뢰 인프라'로 인식하고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 관계자는 “비트코인의 제도권 편입은 단순히 가상자산 시장 확대를 넘어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사회 전반의 신뢰 시스템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개인정보보호와 확장성 문제가 해결된다면, 블록체인은 디지털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더욱 광범위하게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스경제 / 전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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