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에서 스테이블코인 법안인 '지니어스법'이 통과되면서 스테이블코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면서 중앙은행과 전 금융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큰 일반 암호화폐와 달리 미 달러, 미 국채 등과 같은 안전자산과 가치가 연동되도록 설계돼 변동성이 적은 디지털 화폐다. 예를 들어 1달러 가치에 고정된 스테이블코인은 1개를 발행할 때마다 발행사가 1달러 상당의 자산을 실제 보유해야 한다.
미국은 지난 7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과 운영을 위한 포괄적인 규제안인 '지니어스법'을 통과, 스테이블코인을 디지털자산으로 정의해 제도권에 편입시키면서 새로운 화폐로 주목을 받았다.
올해 6월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한 후 국내 금융권과 기업들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사업자의 자기자본 요건을 5억원으로 제시하고, 디지털자산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또한 코인 거래소의 상장과 상장폐지 가이드라인을 마련, 소비자 보호를 위한 구체적 내용을 담았다. 민 의원은 현행 가상자산법상 스테이블코인 등 디지털 자산을 포괄한 유형별 인가·등록·신고 및 감독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
이후 △안도걸 민주당 의원 '가치안정형 디지털자산법'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 '가치고정형 디지털자산법' △ 김현정 민주당 의원 '가치안정형 디지털자산법' 등이 추가 발의돼 국회에 계류중이다.
상황이 이렇자 금융권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전국은행연합회는 내부 디지털금융전문위원회 산하에 디지털자산 소위원회를 신설했다. 국내 주요 은행 13곳은 오픈블록체인·DID협회(OBDIA)내에 신설된 스테이블 코인 분과에 참여해 스테이블코인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주사들은 테더와 서클 등 미국 굴지의 스테이블코인 발행기업과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4대금융지주 은행들은 이미 내부에 태스크포스(TF)를 구성, 파일럿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1, 2위를 다투는 테더와 서클 주요 경영진과 회동을 통해 사업 영역을 확대할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이달 8일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서울 중구 신한금융 본사에서 마르코 달 라고 테더 부사장을 만났다. 테더는 스테이블코인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진 회장은 8월 히스 타버트 서클 총괄사장과 직접 회동하는 등 스테이블코인 사업 확대 의지를 드러냈다.
하나금융 함영주 회장은 지난달 서클의 히스 타버트 사장을 만나 디지털 자산 현안을 논의, 이달에는 이은형 부회장과 박근영 하나금융티아이 사장이 마르코 달 라고 부사장, 퀸 르 아태지역 총괄 등을 만나 협업 가능성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김형년 두나무 부회장도 동행할 것으로 알려져 3사 협업 가능성도 제기된 상태다.
정진완 우리은행장도 같은 달 레오나르도 리얼 테더 최고준법감시책임자(COO)를 만났다. NH농협은행은 주요 실무진이 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영서 KB금융 국민은행 부행장도 테더의 라고 부사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친 한국은행도 최근 디지털자산의 필요성을 인정하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시 은행 중심의 발행 구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스테이블코인이 통화와 함께 외환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어 통화 정책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스테이블코인이 법정화폐와 완벽한 단일성을 유지하지 못해 디페깅이 발생할 시 고객 예치금을 보호할 장치가 부재하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8일 고경철 한국은행 전자금융팀장은 "우리나라 제도 환경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자본 흐름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유출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을 허용하는 것은 사실상 '지급결제 전문 은행업'을 허용하는 것과 유사하며, 이 때문에 은행권 중심의 발행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과 별개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과 예금토큰이 향후 경쟁하며 상호 보완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한은은 110조원 규모의 국고보조금을 디지털화폐로 지급하는 시범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 시범 사업은 한은의 CBDC 사업인 '한강 프로젝트'의 2차 사업 중 하나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번 프로젝트는 투자할 의자가 있는 은행하고만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시중 6개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기업)이 해당 사업 테스트 참여를 긍정 검토 중이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자본유출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오히려 테더의 국내 유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 달러화의 국외유출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코인런 등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환율 변동성에 대한 영향도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므로, 외환안전성 저하를 이유로 금융혁신에 대한 글로벌 흐름에 역행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서울파이낸스 / 박영선 기자
원문 : https://www.seoulfn.com/news/articleView.html?idxno=606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