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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동향

[정책 및 기술동향] CBDC 한계 드러낸 ‘한강’…스테이블코인은 기술로 신뢰 도전
2025.11.06

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을 ‘신뢰 부족의 위험 자산’으로 규정하며 예금토큰과 CBDC를 대안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최근 전통 금융권의 신뢰 붕괴 사례와 민간의 기술 기반 신뢰 모델을 비교하면, 한은의 통제 중심 접근은 시대 변화에 뒤처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한은이 지난 4~6월 진행한 CBDC 시범 사업 ‘프로젝트 한강’의 예금토큰 전환액은 총 16억4000만원이었다. 이 중 실제 결제에 사용된 금액은 6억9000만원으로 전체의 42.1% 수준에 그쳤다. 실사용 확산이 지연된 이유로는 제한된 사용처, 낮은 접근성, 한은의 로드맵 부재 등이 꼽힌다.

 

“대형은행도 신뢰 무너졌다”… 중앙통제형 금융의 역설

 

‘신뢰는 기술로 구축된다’는 명제는 블록체인 기술이 존재하는 근본 이유다. 중앙의 명령이나 보증 없이, 공개된 장부와 자동 검증 시스템을 통해 거래 신뢰를 가능케 한다. 반면 전통 금융은 중앙기관의 신용 독점에 의존하며, 이 신뢰가 흔들릴 때마다 금융 위기가 반복됐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과 크레딧스위스(CS) 사태는 이 같은 중앙집중 금융 시스템 신뢰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SVB는 미 연방준비제도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보유한 장기 국채 가치가 급락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이후 예금자들의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이 발생하며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결국 파산했다. CS는 잇단 투자실패와 헤지펀드 대출 손실 등으로 재무구조가 취약해진 상태에서 고객들의 대량 예금 인출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스위스 중앙은행과 정부가 긴급 개입했으나, 결국 UBS그룹에 초고속으로 인수되며 160년 역사를 마감했다.

 

전통 금융기관의 신뢰 붕괴는 디지털자산 시장에도 파장을 불러왔다. 대표적 사례는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 써클(Circle)이다. SVB에 예치한 약 33억달러의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USDC가 일시적으로 달러 페그(1대1 가치 연동)가 깨졌다. 그러나 이는 코인 자체의 결함이 아닌, 전통 금융권의 신뢰 위기와 유동성 문제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시장은 이를 외부 요인으로 판단했고, 며칠 만에 가치를 회복했다.

 

결국 한국은행이 강조하는 ‘화폐는 신뢰를 토대로 작동한다’는 원칙은, 아이러니하게도 신뢰 붕괴가 중앙집중형 금융시스템 내부에서 촉발됐다는 현실에 부딪힌다. 블록체인은 기술을 통해 신뢰 독점을 분산시키고, 거래의 투명성과 검증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전통 금융의 반복된 위기에서 도출한 교훈을 기술적으로 해소하고자 한다.

 

“스테이블코인, 효율성과 확장성 동시에 추구 가능해”

 

한은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가의 보증이 없는 스테이블코인은 금융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며 예금토큰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예금토큰은 은행 예금을 디지털화한 형태로 기존 규제를 그대로 적용받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접근이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투명한 신뢰’의 가능성을 제약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은행이 주도한 ‘프로젝트 한강’은 예금토큰 실증의 첫 시도였지만, 중앙통제형 설계로 실사용 확산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시중은행이 발행을 맡았지만 소비자는 일부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고, 실증 이후 상용화 계획도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 프로젝트 한강에 참여한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계속 요구했던 건 로드맵이었다”며 “한은이 장기적인 추진 계획을 제시하지 않아 내부적으로 동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명분이 없어서 못 하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결과가 중앙집중적 신뢰 구조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임병화 성균관대 핀테크융합전공 교수는 “CBDC는 안정성과 정책 도구로서 의미가 있지만, 혁신 측면에서는 제약이 많다”며 “스테이블코인은 시장 참여 기반으로 효율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JP모건은 민간 주체로서 다른 방향을 택했다. 자사 블록체인 플랫폼 키넥시스(Kinexys)를 기반으로 예금토큰을 직접 설계·운용하며, 금융 규제 체계 안에서도 높은 자율성을 확보했다. 기관 고객 간 실시간 자금 이체, 무역금융, 담보 관리 등 복잡한 거래를 온체인에서 처리하고, 스마트컨트랙트를 통해 조건부 결제도 자동으로 이뤄진다. JP모건의 모델은 기술을 신뢰의 기반으로 삼아 제도적 안정성과 혁신을 조화시킨 사례로 평가된다.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공동 창립자는 “중앙화된 시스템은 기술적 효율보다 신뢰의 기반을 훼손할 수 있다”며 “사회가 기술을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계하고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폐쇄형 플랫폼이 여전히 시장을 지배하고 있지만, 사회적 신뢰를 지키려면 개방적이고 감사 가능한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록미디어 / 김제이 기자

원문 : https://www.blockmedia.co.kr/archives/1001748